‘몽클라르의 길’에서… 영웅에 경례 바친 佛사관생도들
[한미 동맹 70년, 번영을 위한 동행] [9] 지평리 ‘몽클라르 조형’ 제막식
◇ (조선일보 ∣ 양지호 기자) https://www.chosun.com/politics/2023/10/10/4DNXEEYIJNCGFDAJFXDU2EQCTU/
▲‘몽클라르의 길’ 기념 조형물 제막식이 9일 경기 양평군 개군레포츠공원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오른쪽에서 넷째), 양평군 6·25 참전 용사, 프랑스 육군사관학교 생도 등이 참석했다. 남한강을 배경으로 액자에 담긴 느낌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조형물 가운데가 직사각형으로 뚫려 있다./이태경 기자
“사랑하는 아들아, 언젠가 내가 너를 떠나야 했던 이유를 물을 것이다. 한국의 길거리에는 너와 같은 옷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어린 소년들이 아주 많단다. 너와 같은 어린 소년들이 길에서, 물속에서, 진흙 속에서, 눈 속에서 헤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여기에 왔단다.”
아직 글도 모르는 한 살배기 아들에게 이 같은 편지를 남기고 자진해 중장에서 중령으로 4계급 강등해 6·25 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군인이 있다. 1951년 2월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군 인해전술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둔 랄프 몽클라르(1892~1964)다. 그와 같은 잊힌 영웅의 헌신으로 한국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경제발전을 이룩해 지금의 번영을 누리고 있다. 9일 그를 기리는 조형물이 지평리 전투 승전 72년 만에 경기 양평군 개군레포츠공원에 세워졌다. 몽클라르 장군 이름을 딴 3421m 자전거길 ‘몽클라르의 길’ 초입이다. 6·25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군 3421명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 13~15일 미군 23연대와 프랑스 대대 등 4500명이 중공군 3개 사단 2만5000명을 상대로 지평리를 지켜낸 싸움이다. 중공군 참전 이후 장진호 전투에서 패배하고 1·4 후퇴로 서울을 포기하며 열세에 놓였던 국군과 유엔(UN)군이 처음으로 인해전술에 맞서 승리를 거둔 전투다. 몽클라르 장군과 미군은 이 전투에서 5배가 넘는 중공군의 포위 공격을 백병전까지 벌이며 버텨냈고, 결국 승리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전진선 양평군수, 권혁동 11기동사단장, 베르트랑 자도 주한프랑스대사관 수석참사관, 육사에서 파견교육을 받고 있는 프랑스 생시르 사관학교(육사) 생도 6명, 6·25 참전용사 10명 등이 참석했다. 몽클라르 장군의 사관학교 후배인 앙투앙(23) 생도는 “몽클라르 장군이 대대를 지휘하기 위해 중령으로 강등한 게 가장 감명깊었다”며 “군인이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헌신”이라고 했다. 동료 생도인 자니(24)는 “프랑스 육사에서는 명장들의 이름을 따 기수명을 붙이는데 몽클라르 장군은 10년 전에 쓰였다고 들었다”며 “한불 공통의 역사를 추모하고 기리는 행사에 오게 돼 영광스럽다”고 했다. 6·25 참전용사 이정(90)씨는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 이역만리 외국에서 우리가 이렇게 잘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 분들을 위해 늦게나마 행사를 하게 돼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9일 오전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자전거길에서 몽클라르의 길 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이태경 기자
제막식에 앞서 국가보훈부가 후원하는 ‘동맹 로드(길)’ 행사도 열렸다. ‘동맹 로드’는 정전 70주년을 대내외에 알리고 유엔 참전국과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참전국의 주요 전적지를 자전거로 달리는 행사다. 이날 행사는 양평 일대 118㎞를 자전거로 달리는 양평 ‘그란폰도’ 행사와 연계해 이뤄졌다. 이 코스에는 지평리 전투 전적지가 포함돼 있다. 전진선 군수는 이날 30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우리 대한민국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함께했던 유엔 참전국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맹 로드 대장정은 지난달 1일 튀르키예군의 김량장리 전투지인 경기 용인, 지난 5월 영연방 4국이 사투를 벌였던 경기 가평에 이어 이날이 세 번째였다. 이날 행사는 양평군이 주최하고 국가보훈부가 후원했다.
양평군은 내년 지평리 전투 73년을 맞아서 국제학술심포지엄도 준비하고 있다. 지평리 전투에 참전했던 한국·프랑스·미국·중국의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참전국의 인식을 교류하면서 ‘평화’의 의미를 찾아보겠다는 것이다. 양평군 관계자는 “지평리 전투가 벌어졌던 2월 중순을 목표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지평리 전투의 의미를 그동안 알려온 사단법인 ‘지평리를사랑하는모임’ 김성수 법무법인 아태 변호사는 “지평리 전투는 한·미·프·중 4국이 맞섰다는 점에서 문화·문명의 충돌이었다”며 “한국에서는 지평리 전투와 관련해 남긴 자료가 많지 않은데, 심포지엄을 통해 이를 정리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