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에 잠든 '중화민국' 화교를 아시나요... '중공군'과 싸우고도 잊혀진 영웅들
◇(한국일보∣김진욱 기자)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52515230003222
-재한화교참전동지승계회, 23일 서울현충원서
-6·25전쟁에 참전한 장후이린·웨이시팡 추모
-주한타이베이 대표 등 모여 조촐한 추도 행사
▲23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중화민국 참전 군인 장후이린·웨이시팡 선생의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분향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
23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12묘역. '외국인 묘역'으로 불리는 곳이다. 두 개의 봉분 앞에 검은 옷을 입은 30여 명이 모여 중국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인사를 나눴다. 비석에는 ‘종군화교' 장후이린(姜惠霖)과 웨이시팡(魏緖舫)의 이름이 각각 새겨져 있었다. 기단에는 ‘의백장존(義魄長存)’이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의로운 넋은 오래도록 남는다는 의미다.
량광중 주한타이베이대표부 대표가 먼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이어 중화민국(대만의 공식 명칭) 국방부장(우리의 국방장관), 중화민국국민당 한국지부, 한성화교협회 등 명의로 헌화가 이어졌다. 1992년 단교 이후 대만(타이완)은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대만이나 대사관, 대사라는 명칭을 쓸 수 없다. 수도 타이베이만 거론할 수 있을 뿐이다.
추도식은 불과 10분 만에 조용히 끝났다. 참석자들은 이내 뿔뿔이 흩어졌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6·25 참전용사를 기리는 행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순국선열 가운데 순수 외국인은 이들 두 명과 제암리 학살사건을 알린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를 포함해 3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왜 이처럼 숨다시피 하며 넋을 기리는 것일까.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12묘역에 안장된 화교 참전자 장후이린(왼쪽)과 웨이시팡 선생의 묘소. 김진욱 기자
장후이린과 웨이시팡은 재한 중국인, 흔히 말하는 화교다. 6·25 당시 ‘항미원조’를 내세워 북한을 돕기 위해 참전한 중공군과 달리, 이들은 국군의 손을 잡고 전쟁에 뛰어들었다. 중화민국 국민당이 대만으로 쫓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한국의 화교들은 대부분 공산주의가 아닌 자유진영 색채가 강했다.
장후이린(산둥성 출신)은 국민당 국부군 부대원으로 공산당 홍군과 전투를 치른 경험이 있었다. 평양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다 중공군이 6·25전쟁에 개입하자 1950년 11월 국군에 자진 입대했다. 육군 제1보병사단 15연대에 배속돼 적군의 동향을 수색하고 포로를 심문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어 중공군으로 위장해 적진에 침투하다 입대 3개월 만에 과천지구 전투에서 27세의 나이로 적군의 총탄에 스러졌다.
웨이시팡(랴오닝성 출신)은 국부군 대위로 복무하다 1949년 국공내전이 끝난 뒤 평양 인근 탄광 광부로 일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화교 청년들과 함께 한중반공애국단을 조직해 1950년 10월 국군의 평양 입성을 도왔고, 국군 15연대의 중국인특별수색대를 이끌었다. 전쟁 후 한의사로 일하다 1989년 별세했다. 장후이린은 은성화랑무공훈장, 웨이시팡은 금성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23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화교 참전자 장후이린·웨이시팡 선생 추모식에 중화민국국민당 등의 명의로 된 조화가 놓여 있다. 김진욱 기자
이외에도 6·25전쟁에 참전한 '반공 화교'는 많다. 육군은 1951년 1월 이들을 중심으로 ‘SC(서울 차이니즈) 지대’를 만들었다. 약 200명이 소속돼 무장공작과 정보수집 활동에 나섰다. 하지만 기록 부실로 63명이 종군기장과 보국포장을 받은 게 전부다. '잊힌' 전쟁 영웅인 셈이다.
현장에서 만난 김육안 재한화교참전동지승계회 회장은 SC지대원으로 참전한 김성정 선생의 아들이다. 김 회장은 "올해 정전 70년을 맞아 한국 정부가 발굴사업을 해야 하는데 요지부동”이라고 아쉬워하면서도 "그나마 두 분의 열사가 현충원에 모셔져 있다는 것은 (이들의 공로를 기리는) 하나의 증명"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추도식에 우리 정부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다. 정부 명의로 된 흔한 조화 하나 찾을 수 없었다. 한중수교 이후 30년이 지나는 동안 대만과의 공식관계가 단절된 탓에 중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6·25 참전자 예우를 비롯해 호국보훈 업무를 관장하는 보훈처는 이번 행사를 아예 파악하지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23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장후이린·웨이시팡 선생 추도식 참석자들이 행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안다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