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사당 준공 40주년...박 전 국회의장 인터뷰 기사입력 2015.09.02
상대방 인정·경청이 부족한 국회
여야 당대표 잦은 회동은 매우 바람직
국회선진화법 “야당 결재주의” 지적
"지금 누가 국회를 탄압하나? 그런데도 아직 옛날식 대립 풍토가 그대로 남아있다."
국회의사당 준공 40주년인 지난 1일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현 정치권 모습에 대한 실망감을 숨기지 않았다. 레이더P는 이날 국회의 현주소를 진단하기 위해 국회의장(16대 국회)과 김영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 6선의 박 전 의장을 전화인터뷰했다.
박 전 의장은 "대한민국 국회에 여야 간 토론과 타협이 전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타협과 토론이 없는 국회는 죽은 국회다"라며 운을 뗐다. 그는 "민주주의에서는 상대방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인정하고, 그 생각을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간 여야는 갈등과 반목을 이어갔다. 19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개회한 이날, 여야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특수활동비 공방으로 2014년도 결산안 처리 시한(8월 31일)을 지키지 못한 채 정기국회가 개회했다. 이기택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도 법정시한을 넘겼고, 정채특위는 선거제도 윤곽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다.
박 전 의장은 "지금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체제에서처럼 국회를 탄압하는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이제 타도해야 할 상대도 없고, 쿠데타를 일으킨 정부도 없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 정치가 본연으로 돌아가 정상화돼야 하는데, 아직도 옛날 대립의 풍토가 그대로 남아 있다"고 개탄했다.
박 전 의장은 바로 화제를 국회선진화법으로 돌렸다.
국회 위상이 추락한 이유로 국회선진화법을 지목했다. 박 전 의장은 "국회선진화법은 '야당 결재주의'다. 야당이 결재를 안 하면 국회가 아무것도 못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2년 여야가 합의 처리한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일방적 직권상정 권한을 원천봉쇄했고, 법안 통과 기준을 과반수가 아닌 재적의원 3분의 2로 수정했다. 야당의 협조가 없으면 안건 처리가 어렵다는 뜻이다.
박 전 의장은 "국회선진화법은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는 제도"라며 "전 세계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다수결 원칙을 시행하는데 왜 대한민국만 과반수가 안 통하는 나라인가"라고 한탄했다.
그러나 박 전 의장은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지 않았다.
박 전 의장은 "과거보다 나아진 부분도 있다"면서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가 자주 만나는 모습은 과거보다 굉장히 진전된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여야 의원들이 두 대표가 자주 만나는 것을 좋은 일로 보고 두 대표가 타협하는 대로 따라가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전 의장은 여야 대표에게 "지도자라면 과거의 구습으로부터 벗어나자고 소속 의원들에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최근 들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국회는 한목소리로 자아비판의 시간을 가졌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국회가 답답한 모습을 보여왔다"고 했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을 먼저 생각하겠다"고 다짐했다.
박 전 의장은 단호한 경고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는 "국민의 정치 불신이 이어지면 대단히 위험한 사태가 올 수 있다"고 했다. 박 전 의장은 "5·16 이후 민주당 정권 당시 신구파 싸움에만 몰두하고 국회가 제대로 안 돌아갔을 때 군부가 나왔다"며 "대단히 오도된 위험한 정치가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김강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