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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고아의 아버지’ 美 딘 헤스 예비역 대령

  • 날짜2015-03-05
  • 조회수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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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1000여 아이들, 수송기로 살려낸 ‘신념의 鳥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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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당시 미국 공군 조종사로 참전해 한국 공군의 산파 역할을 했고 1000여 명의 전쟁고아를 구한 딘 헤스 예비역 대령(사진)이 3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98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조종사로 활약했던 헤스 대령은 1950년 6월 미 제6146기지 부대의 부대장으로 임명됐다.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미 공군의 F-51 전투기 10대를 한국 공군에 인도하기 위해 창설된 부대였다. 당시 한국 공군에는 훈련기만 있었다. 헤스 대령은 한국군 조종사 10명과 함께 일본 미 공군기지로 건너가 F-51 전투기를 대구 공군기지로 가져왔다. ‘바우트 원’이라고 불리는 이 작전은 한국 공군 건설 작전이었다.

  6·25전쟁에서 250여 회 출격한 헤스 대령은 초기 항공작전을 주도했다. 공군 관계자는 “당시 미 공군 조종사는 100회 출격하면 비전투지역인 일본이나 미국으로 전출됐음을 감안하면 그의 희생정신과 사명감이 얼마나 투철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F-51 전투기 조종 교육까지 맡은 그는 한국 공군의 초석을 세웠다.

  그의 전용기인 F-51D 무스탕 18번기에는 ‘信念의 鳥人(신념의 조인)’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좌우명인 ‘신념으로 비행한다(By Faith, I Fly)’를 옮긴 것. 헤스 대령은 정비사였던 최원문 일등상사에게 자신의 좌우명을 번역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글귀는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의 기상을 상징하는 표현이 됐다. 1982년엔 ‘신념의 조인’이라는 군가도 나왔다. 1975년 작곡된 ‘필승 공군’이라는 군가에서도 ‘하늘 높이 솟구쳐라 신념의 조인’이라는 가사가 있다.

 

  헤스 대령은 1951년 1·4후퇴 직전 중공군이 내려올 때 미 공군 군목이던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과 함께 1000여 명의 전쟁고아를 김포에서 제주로 피란시켰다. 버려진 고아들이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죽어가는 것을 보고 미 공군 지휘부를 설득한 것이다. 그는 ‘한국의 테레사 수녀’로 불렸던 고 황온순 여사, 공군 군의관이었던 고 계원철 장군과 함께 제주에서 10개월간 보육원을 운영했다. 1956년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고아 소녀 한 명을 입양했고, 20여 년간 전쟁고아들을 지원했다.

 

  1975년 6·25 발발 25년을 맞아 한국을 방문한 헤스 대령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실수로 독일 보육원을 폭격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수많은 고아들을 숨지게 한 죄책감을 한국 고아들을 구하면서 다소 씻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헤스 대령의 전쟁고아 수송 작전은 미 국립공군박물관에서 소개되고 있다. 그는 1956년 6·25 경험을 담은 책 ‘전송가(Battle hymn)’를 펴냈다.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주연을 맡은 같은 이름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전송가는 2000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뒤 절판됐다가 2010년 6·25전쟁 60년을 맞아 ‘신념의 조인’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됐다. 이 책에서 그는 “마지막 차례의 어린이가 수송기 안으로 걸어와 문이 닫히는 순간 내가 느꼈던 그 지극한 감사와 안도감은 내 평생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무공훈장과 소파상을 수여했다. 헤스 대령은 “한국이 통일되는 것을 볼 때까지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의 공적은 대한민국 공군사에 영원히 남게 됐다.

동아일보  입력   2015-03-05    정성택 neone@donga.com


 

1000명 피신시키고 20년 후원한 조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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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고아들의 아버지' 헤스 대령(당시 중령)이 고아가 된 한 소녀를 안아 올린 모습./공군제공 


 

'6·25 전쟁고아의 아버지' 딘 헤스 대령

 

1950년 12월. 물밀듯 내려오는 중공군의 기세를 막지 못한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 철수'를 결정한다. 서울에 남은 전쟁고아 1000여명이 중공군 손에 넘겨질 운명이었다. 이때 한 미군 조종사와 군목(軍牧)이 나섰다. C-47 수송기 15대를 동원해 아이들을 제주도로 피신시키는 계획이 세워졌고, 고아들은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했다.

군목이던 고(故) 러셀 블레이스델 중령과 함께 작전을 이끌었던 딘 헤스 미 공군 예비역 대령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맨 마지막 차례 어린이가 C-47 수송기 안으로 걸어 들어가 문이 닫히는 순간 내가 느꼈던 그 지극한 감사와 안도감은 내 평생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한국 공군은 '전쟁고아의 아버지' 헤스 대령이 3일(현지 시각) 미국 오하이오주(州)에서 98세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1956년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아들 3명을 두었으나 한국 고아 소녀 한 명을 입양했고, 이후 20여년 동안 6·25 전쟁고아들을 지원했다. 1950년 7월부터 1년 동안 한국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을 훈련하는 역할도 맡았다. 자신도 250여 차례나 출격해 임무를 수행했다.

한국 공군은 존경의 표시로 헤스 대령의 전투기인 F-51D 무스탕에 좌우명 'By Faith, I Fly'를 번역한 '신념의 조인(信念의 鳥人)'이라는 글씨를 새겼다. 한국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무공훈장과 소파상 등을 수여했다.

1956년 '전송가(Battle Hymn)'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헤스 대령의 6·25 수기는 전후 60주년을 맞은 2010년 '신념의 조인'이라는 제목으로 재출간되기도 했다. 그의 책은 유명 영화배우인 록 허드슨 주연의 동명(同名)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그는 평소 "조국을 위해 미군이 감히 나서지 못하던 작전도 수행하려는 한국 공군의 불굴의 용기에 감명했다"고 6·25 참전 소회를 밝혀 왔다. 하지만 "한국이 통일되는 것을 볼 때까지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루지는 못했다. 공군은 "당시 참전 미군 조종사는 100회 출격하면 비전투 지역으로 전출되는 것이 관례였다"며 "그의 헌신은 '신념의 조인'으로 대한민국 공군사에 길이 남게 됐다"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