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31일 서울시 서초동 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에서 세계일보와 새해 인터뷰를 갖고 한국 정치가 나아갈
방향과 정국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15년 정치개혁 골든타임] 박관용 前 국회의장에게 듣는다
"전문·분업화 시대 '나홀로 통치' 안돼… 권환 위임
필요"
을미년(乙未年) 새해가 밝았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을 31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에서 만나 한국 정치가
나아갈 방향과 정국 현안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박 전 의장은 정치권을 향해 “권위주의 세력과 싸우던 시대가 아닌데도 그런 투쟁의 역사가
관성처럼 남아 있다”며 “반성하고 자숙하길 기대한다”고 주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대통령의 권한은 위임하면 위임할수록 커진다”며 “과감히
책임과 권한을 위임하는 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았다.
“광복 70년은 분단 70년,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시험한 지 70년이 되는 등 여러 의미가 있다.
분단 70년은 국경이 굳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는다. 남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 체제가 70년이 됐음에도
아직까지 민주정치가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몰인식 때문이 아닌가. 지난 1년간 우리는 세월호 참사, 청와대 문건 유출로
허송세월했다. 다시는 그래선 안 된다고 다짐해본다.”
―10년 전 국회의장 할 때와 지금 정치권을 비교하면.
“10년이
지났으면 많이 나아져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안 되는 것 같다. 내가 정치했던 시대는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였고 투쟁이 정치학적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정통성이 없는 정권, 군사정권과 당연히 싸워야 했다. 지금은 민주적 절차에 의한 정부 출범으로 타도해야 할 정권이 없는
세상이다.”
―국회의원이 욕먹는 이유는.
“민주주의는 내 주장도 있지만 남의 주장도 인정하는 것이다. 국회라는 대화의
장에서 타협, 토론을 통해 일반화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다. 그런데 우리는 내 주장은 옳고, 네 주장은 틀렸다는 선과 악의 구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거리로 나가 싸우는 것이다. 정당, 정치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해야 한다.”
―여야가 정치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아주 가볍고 너무 감각적인 것에 손을 대고 있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국회의원이 출판기념회를
금지하고 세비를 적게 받으라는 게 아니라 일 좀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정치는 무엇이고 국회는 무엇인가를 강조하고 싶다. 최근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에게 여야가 혁신안을 합의해 발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선진화법을 평가하면.
“민주주의
기본정신을 훼손하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3분의 2 합의 조항은 결정 지연 등으로 부작용이 심각하다. 국회가 지난 1년간 법안을 많이 처리하지
못한 것은 과반수를 존중하는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1987년 헌법 개정 때 기초위원으로 참여했다. 정치권의 개헌
주장을 어떻게 보나.
“개헌은 안 된다. 헌법에 결정적 하자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헌법이 잘못돼 나라가 잘못 가는 것이 아니라
정치하는 사람이 헌법을 잘못 운용해 그런 것이다. 금년이 개헌 적기라고 하는데 개헌 내용을 놓고 싸우거나 졸속 추진될 것이다. 헌법개정심의위를
국회에 두고 시기와 주제를 못박지 말고 국민 동의가 이뤄질 때까지 논의해야 한다.”
―박근혜정부가 3년차를
맞았다.
“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공정하고 깨끗하게 애쓴 흔적은 분명히 있고 그런 면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
시대에 맞는 국가경영이냐는 점에서는 문제의식을 갖는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농경사회에는 현대적 감각을 가진 지시형 리더십에 효력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국가경영 방법으론 안 된다. 전문·첨단·분업화된 시대다. 전문가와 국민이 참여하는 토론형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통령은
보고서를 읽는 사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해야 한다. 결론을 내는 게 아니라 하나를 선택하는 자리다. 혼자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보좌진이 필요하다. 비서실장 역할이 중요하다. 비서실장은 국회를 알고 대통령의 약점을 알아야 한다. 예스맨만 있으면 약점을
보완하지 못한다. 대통령은 정부가 만든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에서 입법 세일즈를 해야 한다.”
―박 대통령과 동생 박지만
EG 회장 간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나.
“박 대통령은 동생을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만나야 한다. 남매간인데
어떻게 안 보나. 너무 경직되는 것도 문제다.”
―이명박정부 자원외교 국정조사 어떻게 보나.
“자원외교는 필요하되,
경험 있는 전문가가 해야 한다. 대통령 형이자 정치인이 자원외교를 한 것은 잘못이다.”
세계일보 황용호 정치전문기자
drag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