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식 前 우리은행 부행장·'천원의 기적, 희망의 우물' 상임이사
입력 : 2014.11.07 04:34
나이 60을 맞이해서 뜻있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조국이 내게 무엇인가' 생각도 해보고 싶었고, 때묻어 있을지도 모를 나의 신앙심도 되돌아보고 싶었다. '애국과 신앙'이라는 주제로 약 3주간 우리 땅 순례에 나섰다. 조국을 위해, 신앙을 위해, 이웃 국가의 자유와 평화 수호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찾아다녔다. 순례 도중에 특별히 해외 참전 국가의 참전비를 꼭 방문하려고 노력했다. 문산·파주·동두천·가평·춘천·용인 등 곳곳에 산재해 있는 '전투지원' 해외 참전 국가의 16개 참전기념비를 다니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오카리나 악기로 그들에게 사랑의 노래를 바쳤다.
부산 UN기념공원을 방문했을 때였다.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 장병들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 정성 들여 가꾸어 놓은 것을 보고 우리 대한민국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이 자랑스러움은 며칠 가지 못했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참전기념비를 일일이 방문했을 때 실망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우선 대부분 참전기념비를 안내하는 교통 표지판이 없었다. 둘째, 게양돼 있는 UN기와 참전국 국기, 그리고 태극기가 바래고 찢어져 너덜대고 있었다. 셋째, 찾아오는 이들이 거의 없지만 전몰 군경 유족회와 미망인회에서나마 따뜻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찾아오고 있었다. 아쉽게도 그들이 뜻을 기리고 간 후 남은 자리에는 시들어버린 조화들이 마른 채 또는 바람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넷째, 지역 주민들이 참전기념비 주차장을 볍씨나 곡식을 말리는 건조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10월 31일자 조선일보가 반가이 기다리고 있었다. 만물상 '부산을 향하여'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부산 UN기념공원과 관련된 이야기지만 우리 대부분이 모르고 있는 내용이었다. 캐나다 6·25 참전 용사 빈센트 커트니씨는 2007년, 매년 11월 11일을 기해 전 세계의 6·25 참전 군인과 유족들이 '부산을 향하여(TURN TOWARD BUSAN)' 1분간 묵념하자고 제안했고, 국가보훈처가 올해부터 21개국 모두가 참여하는 행사로 확대키로 했다 한다. 국가보훈처는 행사의 일환으로 10월 30일 오전 10시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어 일반인들로부터 참여 의사 표시와 함께 사진 등록을 받기 시작했으며, 캠페인을 확산시켜 행사 당일까지 10만명을 넘긴다는 목표였다. 참으로 좋은 취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1월 1일 저녁까지 참여 인원이 248명으로 저조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참여하는 방을 바로 찾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6·25 참전 국가의 참전기념비를 제대로 관리하여 그들이 매년 11월 11일 11시(한국 시각) '부산을 향하여' 머리를 숙이는 행사가 빛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한다. 작년 8월 서울시청 인근에 큰 플래카드가 걸렸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는 이역 땅에 와서 순교나 순국한 그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순례를 통해 "기억하라, 결코 잊지 마라, 그리고 감사하라"는 교훈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