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좌익의 학살....부자·경찰 가족이라고 죽이고 아기까지 水葬
[김기철 전문기자의 Special Report] 진실화해위원회 6·25 가족 집단학살보고서
◇ (조선일보│김기철 기자) https://bit.ly/3ErOsjd
▲ 2017년 신안 임자면 진리 백산들에 세워진 순교기념비 제막식. 6·25 당시인 1950년 10월 4일 밤 이판일 장로 일가 12명은 집에서 수요 예배를 드리다 끌려 나와 다음날 새벽 이곳에서 좌익들이 휘두른 몽둥이와 죽창, 삽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판일 장로 아들인 이인재 목사는 가족을 죽인 가해자를 용서하고 교인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용서하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진리교회
전남 장흥군 대덕읍 옹암리에 살던 김기순(당시 48세) 일가 36명은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 10월 초 지방 좌익에 끌려가 몰살당했다. 인민군이 퇴각하던 무렵이었다. ‘부유하다’는 게 빌미가 됐다. 김기순 부부와 아들, 동생 부부, 조카 등 35명은 동네 앞바다에 수장됐다. 시신은 옹암리 앞바다 갯벌에서 발견되거나 바닷가에 떠밀려 왔다고 한다.
서울대 법대 신입생이던 김씨 장남 김수현은 고향 마을로 돌아오다 같은 동네 출신인 좌익들을 만났다. ‘다 아는 사람들인데 설마 우리를 죽이겠어’라고 했지만, 김수현은 이들에게 맞아 죽었다. 10남매 중 타지에 있던 남동생 둘만 겨우 살아남았다. 희생자 36명 중 10세 미만이 10명이나 됐다. ‘아기들을 수장하려고 가마니에 넣어서 가는데, 장난치는 줄 알고 웃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주민 모아놓고 죽창으로 가족 몰살
전남 영광 백수면에 살던 김진원(당시 68세)씨 일가 20명도 1950년 10월 3일 동네 저수지 인근 정자나무 아래로 끌려 나갔다. 지방 좌익이 마을 주민들을 모이게 한 뒤 ‘부유하다’ ‘기독교인이다’ ‘면사무소에서 일하는 식구가 있다’는 이유로 죽창으로 찔러 죽였다. 김진원은 이 동네 백수교회 장로였고, 가족 모두 교회 신자였다. 희생된 가족 중에는 여섯 살 손녀를 비롯, 미성년자도 여럿이었다. 이날 박모씨 가족 7명, 임모씨 가족 10명도 함께 희생됐다.
본지가 입수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말까지 진실 규명을 마친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1039명 중 김기순 일가처럼 좌익·빨치산 등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한 경우는 308명이었다. 영암군 학산면 독천리의 윤형수 일가 18명, 학산면 상월리의 김윤찬 일가 17명, 장흥군 대덕읍 연정리의 강주삼 일가 16명, 전남 화순군 북면의 김상규 일가 14명 등 10명 이상 떼죽음당한 사례도 많았다.
▲ 진실화해위원회가 2022년 말 펴낸 보고서 중 일부다. 전남 신안 임자면 진리교회, 영광 백수면, 장흥 대덕읍, 영암 학산면에서 좌익 등 적대세력이 죽인 민간인 희생사건을 다뤘다.
◇'軍警이 가해자’ 신청 사건이 좌익보다 2.5배
진실화해위는 가족이 7명 이상 희생당한 사건을 집단적 가족 희생 사건으로 분류했다. 군경·우익 단체에 의해 가족이 집단 학살된 경우는 40명이었다. 7명 이상 희생은 없었고, 3명 이상으로 기준을 내려 얻은 숫자다. 좌익의 민간인 학살은 가족을 집단적으로 죽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다.
이번 가족 집단 학살 통계는 위원회가 지난 1년 6개월간 진상 규명을 마친 사건(1039명)만 기준으로 했다. 위원회에 접수된 6·25 전후 민간인 희생 사건은 군경, 우익을 가해 주체로 지목한 사건(9957건·1만256명)이 좌익·인민군을 지목한 사건(3885건·4032명)보다 2.5배쯤 많다. 민간인 희생 사건 진상조사가 끝나면, 군경, 우익 단체가 가해 주체인 사건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위원회는 “전체 조사 기간 절반쯤 지난 상태에서 얻은 결과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면서 “좌익의 민간인 학살은 가족을 몰살시키는 경우가 많고, 여성, 어린이, 고령자의 희생 비율이 높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경찰 가족의 집단 희생 많아
진실화해위의 민간인 희생 사건 보고서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경찰·공무원 가족’ ‘기독교인’이라거나 ‘잘산다’는 이유로 좌익에 의해 집단 학살당한 가족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영암 학산면 일대에선 경찰 가족이라는 이유로 집단 학살이 이루어졌다. 상월리 김동진·김윤제(19명), 김윤찬(17명) 일가, 묵동리 고승환(11명) 일가, 독천리 박정안(7명) 일가, 용소리 곽사원(7명) 일가 등이다. 김동진의 사촌은 경찰이었는데, 빨치산들이 토벌에 대한 보복으로 마을 앞산, 냇가에서 일가족 19명을 죽창으로 찔러 몰살시켰다고 한다. 김윤찬 일가도 아들이 경찰이라는 이유로 마을 뒷산에서 지방 좌익에 의해 희생당했다. 좌우 대결의 선두에 있던 경찰을 가족으로 뒀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가 많다는 사실이다.
▲ 6·25당시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좌익에게 목숨을 잃은 임자 진리교회 신자 48명을 추모하면서 세운 기념탑(1990년). 진리교회 입구에 있다.
◇임자 진리교회 신자 48명 집단 학살
신안군 임자면 진리교회 이판일 장로 일가 12명은 1950년 10월 4일 밤 집에서 수요 예배를 드리던 중 습격을 받았다. 지방 좌익이 예배당을 폐쇄했기 때문에 집에 몰래 모였다. 일가는 포승줄에 묶여 근처 대기리 백산들로 끌려갔다. 좌익들은 이들을 죽창과 몽둥이로 살해한 뒤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매장했다. 진리교회 신자 35명도 이판일 일가 피살을 전후해 희생됐다. 임자 진리교회는 당시 희생당한 신자 48명을 순교자로 기념하고 있다.
이판일 일가 희생자 중 일곱 살 조카 이완순을 비롯, 19세 미만 미성년자는 7명이다. 이완순은 그날 밤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가족이 끌려가는 자리에 없었다. 하지만 이판일 일가를 죽이고 돌아오던 좌익에게 발견돼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다른 가족은 시신을 수습했지만 갯벌에 버려진 이완순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고 한다.
(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