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 부친 미대생 美 병사의 6·25 그림들…70년만에 '빛'
- 참전용사 스트링햄, 전장서 그린 60여점 한국전쟁유업재단에 기증
- 화가지망생, 핵물리학자로 변신…달라진 한국에 "믿을 수 없는 꿈”
▣ (연합뉴스|강건택 기자)
(기사전문) https://www.yna.co.kr/view/AKR20220409004600072?section=search
▲‘아군 조명탄에 눈 속에 숨어있던 우리 위치가 노출됐다'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한국전쟁 미군 참전용사인 로저 스트링햄(93)이 1951년 강원도 화천 일대 전투에서 연필로 그린 전투 스케치. 스트링햄은 최근 미 비영리단체 한국전쟁유업재단에 이 스케치를 포함한 60여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2022.4.9. firstcircle@yna.co.kr [한국전쟁유업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미국 캘리포니아미술대학에서 그림을 전공하던 22살 청년 병사는 틈만 나면 강원도의 산과 풍경, 미군 동료들의 생생한 모습, 다양한 작전 활동을 화폭에 담았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전선에서 구할 수 있었던 그림 도구는 맥주, 담배, 치약, 비누 등 보급품 상자 바닥에서 뜯어낸 종이와 연필 한 자루가 전부였다.
긴박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연필을 놓지 않은 것은 고향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있는 부모님께 "나는 괜찮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편지를 부칠 때마다 한 장씩 동봉한 6·25 전쟁 스케치는 어느덧 60점을 넘었다. 모친은 아들의 스케치를 모아 1952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우리 부대 기관총수 앤턴'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한국전쟁 미군 참전용사인 로저 스트링햄(93)이 1951년 강원도 화천 일대 전투에서 연필로 그린 동료 병사 스케치. 스트링햄은 최근 미 비영리단체 한국전쟁유업재단에 이 스케치를 포함한 60여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2022.4.9. firstcircle@yna.co.kr [한국전쟁유업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후 병사의 집에서 잠자던 스케치와 그가 1952년 일본으로 재배치된 뒤 물감으로 다시 그린 수채화 등 6·25 전쟁을 다룬 작품 60여 점이 9일(현지시간) 미 비영리단체인 한국전쟁유업재단(이하 유업재단)을 통해 70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유업재단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로저 스트링햄(93)의 작품들은 백병전, 참호전, 폭격기, 추락한 전투기, 야간 순찰, 병사들의 이동 등의 장면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백병전'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한국전쟁 미군 참전용사인 로저 스트링햄(93)이 1951년 강원도 화천 일대 전투에서 연필로 그린 전투 스케치. 스트링햄은 최근 미 비영리단체 한국전쟁유업재단에 이 스케치를 포함한 60여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2022.4.9. firstcircle@yna.co.kr [한국전쟁유업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시야 확보를 위해 산꼭대기에서 나무 자르는 병사'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한국전쟁 미군 참전용사인 로저 스트링햄(93)이 1951년 강원도 화천 일대 전투에서 연필로 그린 동료 병사 스케치. 스트링햄은 최근 미 비영리단체 한국전쟁유업재단에 이 스케치를 포함한 60여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2022.4.9. firstcircle@yna.co.kr [한국전쟁유업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동받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스트링햄의 말대로 전장 주변의 풍경에만 집중한 작품도 많다. 한국을 떠나면서 배에서 본 마지막 광경들은 일본에서 여러 점의 수채화로 재탄생했다.
혼자 간직하던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기로 결심한 것은 현 거주지인 하와이에서 지난 2월 이뤄진 한종우 유업재단 이사장과의 인터뷰에서였다.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2012년부터 유엔 참전용사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사업을 진행 중인 한 이사장은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의 유해감식반 활동을 다루는 교육자료집 제작을 위해 하와이를 찾았다가 스트링햄과 처음 만났다.
마침 그림의 영구적인 보관 장소를 찾고 있던 스트링햄은 유업재단 홈페이지에 한국전쟁 스케치와 수채화를 전부 옮겨놓는 게 "최고의 선택"이라며 한 이사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산꼭대기에서 시간을 보냈다'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한국전쟁 미군 참전용사인 로저 스트링햄(93)이 1951년 강원도 화천 일대 풍경을 묘사한 그림. 이듬해 일본으로 재배치된 후 수채화로 다시 그렸다. 스트링햄은 최근 미 비영리단체 한국전쟁유업재단에 이 스케치를 포함한 60여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2022.4.9. firstcircle@yna.co.kr [한국전쟁유업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금성을 향해 진격하는 탱크들'
(뉴욕=연합뉴스) 강건택 특파원 = 한국전쟁 미군 참전용사인 로저 스트링햄(93)이 1951년 강원도 화천 일대 전투에서 연필로 그린 전투 스케치. 스트링햄은 최근 미 비영리단체 한국전쟁유업재단에 이 스케치를 포함한 60여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2022.4.9. firstcircle@yna.co.kr [한국전쟁유업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 독립선언문과 헌법 등 4대 건국 문서에 모두 서명한 유일한 인물인 로저 셔먼과 유명 수학자 워싱턴 어빙 스트링햄의 후손인 그는 6·25 발발 후 미 육군에 징집돼 21보병사단 24연대 본부중대 소속으로 1951년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인천에 내린 뒤 건물 하나조차 보이지 않는 해변에서 갯벌을 걸어 이동하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강원도 화천호·금성 전투에 투입된 그와 동료 병사들은 혹독한 추위로 인한 동상으로 고생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