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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와의 대화 - 박관용 전 국회의장

제 1차 명사와의 만남-박관용 전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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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용 6․25추념공원건립 국민운동본부 명예추진위원장

◦ 김영삼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6선 국회의원, 16대 국회의장

◦ 저서 : 통일은 산사태처럼 온다 / 다시 탄핵이 와도 나는 의사봉을 잡겠다 / 나의 삶 나의 꿈, 통일 / 공직에는 마침표가 없다 外 다수

 

Q1. 평생을 공직에 계셨는데 의장님에게 공직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국회의원 6선 등 40여 년을 정치에 몸담았습니다. 대통령이 세우지 않은 최초의 국회의장으로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켜왔습니다.

 

Q2. 정치가 정쟁에 휩싸여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요즘 정치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죠.

 

국회, 여야 모두가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자세가 안 돼 있습니다. 산업화를 일궈낸 박정희 시대는 지시의 리더십이 필요했다면, 박근혜 시대는 토론의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국회는 토론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정치는 내 주장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을 통해 의견을 조정해 나가는 것입니다. 국회의장으로서 ‘일문일답’ 제도를 도입한 것도 일방적인 주장을 제도적으로 막아보려는 것이었습니다. 국회 내 ‘일문일답’ 제도가 안착된 후 한 번도 회의파행이 안 된 것도 이 같은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3. 노무현 정권 때 국회의장으로 탄핵을 이끌었는데, 당시 야당의 반발이 거셌다. 의사봉을 잡은 일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었는지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대통령의 정치개입과 불통에 대해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국회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야당의 탄핵요구가 거셀 때 대통령에게 유감 표명과 야당과의 대화를 촉구했지만, 청와대 측으로부터 돌아온 답은 “대화하지 않겠다.”였습니다. 오히려 야당의 탄핵요구를 선거판에 더욱 이용하려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심지어 탄핵 하루 전 TV 대국민 발언을 한다기에 ‘이제야 대화의 물꼬를 터 사건정리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지만, 탄핵과 관련한 발언 대신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이 무지하고 순진한 자기 형에게 청탁했다’ 등의 동문서답이었습니다. 다음 날 남상국 사장은 한강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의사봉을 잡기로 결심을 하고 당당하게 임했습니다. 날치기 처리 후 도망치듯 의사당을 떠나는 구태를 재연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탄핵 표결 직후 “대한민국은 진전돼야 한다”며 “내가 부끄러운 일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당당히 밝혔습니다. 일본 언론이 탄핵에 대한 생각을 물어볼 때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시작됐다”는 말이 생각났고 민주주의와 헌법을 지켜낸 것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탄핵결의안이 통과되자 여당의 선동이 시작됐습니다. 여론이 합세했고 헌법재판소 앞에는 여당 의원들과 노사모 등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여당의 선동정치는 성공했고, 탄핵결의안은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받고 대통령은 복직했습니다.

 

Q4. 의장님은 무엇보다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데 통일은 언제 쯤 가능할 것으로 보십니까? 또 중국의 방해를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일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독일 통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빌리 브란트(전 서독 총리)가 1989년 6월 한국을 찾았을 때 ‘열강에 둘러싸인 상황에서의 독일 통일의 전망’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죽기 전에는 통일을 보지 못할 것 같다. 오히려 한국 통일이 먼저 될 것 같다”라는 답을 내놓았지만, 결국 6개월이 지나기 전 베를린장벽이 붕괴됐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북한 내 휴대폰이 250만 여대라고 하는 데 휴대폰 500만 시대가 오면 북한은 무너진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소위 ‘급변사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갑작스런 변화에 철저히 대비해야 하고, 이를 위해 중국과의 통일외교를 강화해야 합니다. 통일된 한국이 중국의 국가이익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대안들을 연구해야 합니다.

 

Q5. 6․25추념공원 건립이라는 막중한 일에 동참하고 계신데, 추념공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현대사에 대한 왜곡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는 북한 찬양이 가득합니다. 6.25전쟁에 대한 왜곡도 심각합니다. 심지어 ‘북침’이라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이 6.25참전 기념공원 기공식을 가졌습니다. 오늘 미국을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역사적 상징물이 됐습니다. 6.25추념공원은 이런 왜곡된 역사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21개 참전국 및 전 인류가 지켜낸 6.25전쟁을 역사 그대로 보존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찾아가고 싶은 ‘평화의 성지’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